2011/10/02
2박째 되는 날은 보령 오천항 부근에서 숙소를 잡고 역시나 저녁은 감자탕.
지난 바다 보팅에서 고생한 일행이 있어서 약국에 들러 마시는 멀미약이며, 근육통으로 고생하는 일행을 위한 파스, 하루의 피로를 풀어줄 피로회복제까지 이것저것 붙이고 마셔가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일의 낚시를 준비하며 이것저것 채비며 매듭이며 같이 만들어보고는 베개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역시나 일등으로 일어나서 씻고 주섬주섬 챙기고 편의점에서 점심대신 먹을것과 마실것들 사고 부족한 채비도 사서 송도항으로..
나만 혼자 일찍 일어나면 소용이 없지. 일행들 챙기고 뭐 챙기고 해서 도착한 슬로프에는 이미 주차할 공간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아수라장. 어찌어찌해서 자리가 난 곳에 배를 펴고 나가본다.
오천성(?)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931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성이다. 보령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면적은 125,326㎡에 달한다. 1509년(중종 4) 수군절도사 이장생(李長生)이 서해를 통해 침입해 들어오는 적을 감시하고 물리치기 위하여 쌓았으며 1896년(고종 33) 폐영되었다고 한다. 오천항(鰲川港)은 백제 때에는 중국·일본과 교역하던 항구로서 회이포(回伊浦)로 알려졌으며 고려 때부터는 왜구가 자주 침범하자 이를 물리치기 위하여 군선(軍船)을 두었다.
축성 당시에는 사방에 4대 성문과 소서문(小西門)이 있었다. 동헌을 포함해 영보정(永保亭)·대섭루(待燮樓)·관덕정(觀德亭)·능허각(凌虛閣) 등의 건물은 허물어져 사라졌고 서문인 망화문(望華門)을 비롯해 진휼청(賑恤廳)·장교청(將校廳)·공해관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망화문은 화강암의 아치형 출입구이다.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漕運船)을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서 보호하는 역할을 하면서 왜구가 침탈하는 것을 감시하였고, 근대에는 이양선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충청도 지역의 수군 지휘부 역할을 하였고 수군 편제와 조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9호 보령 오천성으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8월 24일 사적 제501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오천성 근처 칼국수집에서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길었던 낚시여행의 마지막 날을 마무리한다.
개천절을 하루 앞둔 일요일 저녁인데 미리 집으로 돌아가려는 차량들이 많이 몰렸는지 서해안고속도로가 숨이 막힐정도. 장장 네시간을 차에 갖혀서 올라왔다. ㅜㅜ
이래저래 힘들었던 조행.
2박째 되는 날은 보령 오천항 부근에서 숙소를 잡고 역시나 저녁은 감자탕.
지난 바다 보팅에서 고생한 일행이 있어서 약국에 들러 마시는 멀미약이며, 근육통으로 고생하는 일행을 위한 파스, 하루의 피로를 풀어줄 피로회복제까지 이것저것 붙이고 마셔가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일의 낚시를 준비하며 이것저것 채비며 매듭이며 같이 만들어보고는 베개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역시나 일등으로 일어나서 씻고 주섬주섬 챙기고 편의점에서 점심대신 먹을것과 마실것들 사고 부족한 채비도 사서 송도항으로..
나만 혼자 일찍 일어나면 소용이 없지. 일행들 챙기고 뭐 챙기고 해서 도착한 슬로프에는 이미 주차할 공간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아수라장. 어찌어찌해서 자리가 난 곳에 배를 펴고 나가본다.
두족류 생물들을 잡으러 갈때면 항상 바쁘기 때문에 사진마저 찍을 겨를이 없다. ㅎㅎ
돌밭을 탐색하는데 투욱하는 시원한 입질에 올려보니 새우가 먹고 싶었던 우럭. ㅋㅋㅋ
이놈은 손님이라 방생해주고.. 아.. 오전의 치열했던 상황을 알려주는듯 손가락이 ㅋㅋ
오후들어 바람도 심하게 불고 입질이 없어 이만 철수하기로 하고 철수전 쿨러 확인.
언제나 철수때는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이날만큼은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든 하루. ㅜㅜ
무슨 성이지? 했는데 오천성이란다..
오천성(?)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931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성이다. 보령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면적은 125,326㎡에 달한다. 1509년(중종 4) 수군절도사 이장생(李長生)이 서해를 통해 침입해 들어오는 적을 감시하고 물리치기 위하여 쌓았으며 1896년(고종 33) 폐영되었다고 한다. 오천항(鰲川港)은 백제 때에는 중국·일본과 교역하던 항구로서 회이포(回伊浦)로 알려졌으며 고려 때부터는 왜구가 자주 침범하자 이를 물리치기 위하여 군선(軍船)을 두었다.
축성 당시에는 사방에 4대 성문과 소서문(小西門)이 있었다. 동헌을 포함해 영보정(永保亭)·대섭루(待燮樓)·관덕정(觀德亭)·능허각(凌虛閣) 등의 건물은 허물어져 사라졌고 서문인 망화문(望華門)을 비롯해 진휼청(賑恤廳)·장교청(將校廳)·공해관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망화문은 화강암의 아치형 출입구이다.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漕運船)을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서 보호하는 역할을 하면서 왜구가 침탈하는 것을 감시하였고, 근대에는 이양선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충청도 지역의 수군 지휘부 역할을 하였고 수군 편제와 조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9호 보령 오천성으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8월 24일 사적 제501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출처] 보령 충청수영성 [保寧 忠淸水營城 ] | 네이버 백과사전
오천성 근처 칼국수집에서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길었던 낚시여행의 마지막 날을 마무리한다.
개천절을 하루 앞둔 일요일 저녁인데 미리 집으로 돌아가려는 차량들이 많이 몰렸는지 서해안고속도로가 숨이 막힐정도. 장장 네시간을 차에 갖혀서 올라왔다. ㅜㅜ
이래저래 힘들었던 조행.